그림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쉽지만
Sunday, June 29th, 2008이렇게 늦은 밤이 될 때까지 결국 나는 한 마디도 쥐어짜내지 못했습니다. 조금 졸립네요. 방금 새벽 두시를 지났다 싶더니 어느 새 한 시간의 절반이 지나가는, 새벽 두시 삼십오분입니다. 여전히 캘리포니아의 시계에 맞춰진 나의 컴퓨터는 어리석게도, 그리고 또 매우 당연하게도 지금이 여전히 일요일의 아침 열시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득 나는 이 거리를 떠나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상상에 빠졌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지금까지의 나라면 할 수 없었을 그런 삶을 사는 거죠. 그저 동네 한 켠의 편의점이라거나 서점같은 곳의 점원이라던지 하는 자리로, 한두평짜리 방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그런 조용한 삶 말입니다. 기왕이면 산이 가까운 작은 마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시로 나가는 버스편도 드물고, 천천히 굽어가는 완행열차나 겨우 머물어가는 조그만 역이 있는 그런 마을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나의 방에서 나와 작은 나의 마을을 돌아다닐때에는 고작 작은 자전거 한 대로 충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전부 다 잊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잠시 눈을 감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기분좋게 내 얼굴을 스쳐지나가고, 안경 너머로 석양에 붉어진 구름이 흐르고, 뭐 그런 기분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끝나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서.
하지만 삶은 그닥 영화같지 않아서, 그렇게 기분 좋은 순간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날수는 없겠지요. 아쉽게도 우리의 삶에서 마지막 피날레를 맞이하기까지는 원하지 않는 걸음을 내딛어야하고, 그렇게 혼자 바람처럼 사라져버릴 수도 없으니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이별도 준비해야하고, 내가 슬퍼하지 않고 홀가분하게 간다고 해도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눈물에도 마음을 기울여야하는, 그런 거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이 커다란 도시의 한 점과 같은 작은 마을의 작은 반지하방에서 작은 내 컴퓨터 한 대를 앞에 두고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글에 전력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까지만, 여름까지만 견뎌줘, 그러면 뭔가 결정지어질테니까! 라고 나는 지금껏 나 자신을 격려해왔는데, 사실 그런 결정따위 내려지지 않는다는 것,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려지는 결정따위가 있을리가 없으니까, 결국은 내가 결정해야하는건데도, 사실 이미 오래전에 결정해 둔 일인데도, 그게 힘드니까 자꾸 피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내년까지만, 1년만이라도 더 견뎌보라고 나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 나약하네요.
며칠 전 지하철을 기다리다 스크린 도어(나는 이걸 한국어로 도대체 뭐라고 적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전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조금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도 나는 이렇게 초라한 스스로를 보고 조금 비웃었습니다. 강해지겠다는 마음보다도 귀찮은 마음이 더 강한거겠지요. 결국은 순간의 욕망에 무너져버리기만 하는 이런 바보라서 좀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 마지막 보루만큼은 지키고 있잖아! 라는 항변도 해 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서 두 번째 보루까지 지켜보는건 어떠냐, 라고 말해버렸으니 그 항변은 무효겠지만서도 말이죠.
그래서 나는 엉망입니다.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딘가 잘못되어있다고. 나의 가장 큰 잘못은, 잘못된 것을 잘못된 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멍청한 고집입니다. 누구나 어딘가가 잘못되어있으니까 그걸 잘못된채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 잘못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런 내 멍청함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그래서 내가 엉망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