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비난할 수는 없지만
Wednesday, February 27th, 2008그러니까,
하루에 9시간 수면을 채우지 못하면 면역체계가 붕괴되어버리는 나약한 존재에게 지금과 같은 강행군은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이 매우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일을 줄이는 것에 실패했으며, 덧붙여 아무도 내 일을 덜어주기는 커녕 감자포대로 한 더미씩 얹어주고 가고 있다.
그걸 누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탓할 사람은 무지한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 더더욱 절망적일 뿐이다.
그러니까, 간신히 날짜에 맞춰 제출한 편입 원서 외에 재정지원 신청 서류 작성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편입 원서 제출 기한보다 2주나 되는 여유가 있었기에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며 급히 원서를 작성했는데, 사실 2개월동안이나 써지지 않던 마지막 에세이만 아니었어도 원서 제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였다. 그렇지만 한 숨도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달려온 나는, 다급해진 마음 탓이었는지 아무것도 쓰지 못한채 마지막 날까지 째깍이는 초침에 시달려야했다. 바쁘게 공부에만 집중했던 겨울학기가 끝나고 금새 2월 11일, 겨울학기가 시작했다. 그리고 2월 16일, 하늘이 도왔는지 주어진 1일의 기간 연장으로 다행히 모든 서류를 제 날짜에 발송할 수 있었다
봄 학기가 시작되자 학교 수업은 오히려 약과였다. 수업 외에 클럽의 리더로서 주어진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랴, 새로운 계획을 세우랴, 봉사활동 다니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정말 현대 물리를 듣지 않기로 한 것은 매우 현명한 처사였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려던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해야할 일을 줄여나가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하루하루 일에 쫓기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고, 간신히 만들어 놓은 하루의 생활 리듬이 다시 깨어지기 시작했다. 2월 23일에 예정에 없던 봉사활동을 반나절 다녀온 이후로 결국 겹친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16시간을 내리 잠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일요일에 계획했던 봉사활동을 취소했고, 주말에 해야할 과제들을 미루게 되었다. 2월 25일, 주말 내내 잔 덕분에 조금 돌아온 기운으로 재정 지원 신청 서식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새 밀린 과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2월 26일, 겨울 학기 이래로 처음 새벽 5시까지 깨어있었다. 그렇지만 고작 이룬 것은 밀린 영문학 수필 뿐이었고, 돌아온 것은 두 시간 가량의 선잠이었다.
결국 2월 27일,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 재정 지원 신청 서식의 작성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3월 1일까지 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2월 28일에 겹친 연극 공연과 - 나는 여전히 대사와 행동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 인류학 시험에 겁에 질려있는 나로서는 어떤 의미에서도 차분하게 서류를 작성하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나는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일에 질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싶지만, 결국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상 길게 글을 적고 싶지만, 초조해진 내게는 5분여의 짧은 휴식으로 불만을 토로해낼 수 있다면 이미 충분히 긴 시간을 소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바쁘게 다른 일들을 정리하고 내일의 행사 일정과 연극 준비, 시험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견뎌나갈수만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남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 역시 많은 이들을 사랑하지만, 우리의 그런 마음은 정말 깊은 곳의 간절한 마음에 닿지 않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때때로 인간이 자신의 뇌를 100%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지나치게 현명해진 인간들은 혼돈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존재의 이유를 질문하는 것, 물론 그것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 준 지식의 추구가 가져다 준 판도라의 상자이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부정케 만드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그 존재의 무상함 앞에서 인간은 좌절하고 무너지며 공포에 오그라든다. 그리고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 인간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삶의 의미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그 인간은, 그때까지 다른 수많은 대상들에게 부여한 의미와 유사한 것을 자기 자신에게도 부여하는 일에 실패해버린 그 인간은, 결국 사고의 심연에 가라앉아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깊이 잠겨버린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손길은, 생각처럼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은 그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 그 마음의 존재의 여부를 떠나 - 닫아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며, 닫혀버린 마음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는 타인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